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귀주성 전투 (문단 편집) == 이후 == 훗날 몽골 사신이 [[박서]]가 성을 굳게 지키며 항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죽이려 하자 [[최우]]가 그에게 "나라에 대한 경의 충절은 아무데도 견줄 수 없으나 몽골의 말도 두려워할 만한 것이다. 경은 잘 생각해 처신하라.(卿於國家 忠節無比 然蒙古之言 亦可畏也。卿其圖之。)"고 해 박서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죽주로 귀향을 했다. 하지만 최씨 정권의 ~~쓸데없는~~ 몽골과의 결전 의지로 인해 다시 등용되어 문하평장사(門下平章事)가 되었다. 김경손은 자신의 형이었던 김약선이 최우의 사위로써 후계자로 지명된 상태였기에 별다른 처벌은 없었다. 이 점에서 [[임용한]]은 김경손을 높게 평가한다. [[최우|고려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일가]]에 소속된 인물로 최씨 일가와 함께 후방에서 떵떵거리며 지낼수 있었으나, 김경손은 오히려 [[노블리스 오블리제|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 했기 때문]]. 오히려 3차 침입 기간 도중 호남 지방에서 발생한 이연년의 난을 진압하며 그 공으로 추밀원지주사로 승진까지 했다. 그러나 후계자로 지명되있던 형 김약선이 최우의 서자였던 [[최항]]의 음모로 살해당했고 이후 최항이 새로운 집권자가 되어 자신의 반대파들을 숙청하던 때에 그 역시 살해당한다. 송문주는 이후 있을 2차 침입 기간 중 죽주산성에서 또 한 번 결사항전을 선보이며 끝내 몽골군을 격퇴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